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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variant of CJD, vCJD, 인간광우병, 후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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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PD수첩을 둘러싼 재판의 1심이 무죄로 판결나고서, 새삼  PD 수첩의 방송 내용에 대한 논쟁이 진행중이다.

그 중 하나는,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가 인터뷰 중에 얘기한 “a variant of CJD’를 인간광우병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느냐는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의학용어 사전에서 발견한 문구를 보자.

http://www.medterms.com/script/main/art.asp?articlekey=2863

There are several known variants of CJD. These variants differ somewhat in the symptoms and course of the disease. For example, a variant form of the disease — called new variant or variant (nv-CJD or v-CJD), described in Great Britain and France — begins primarily with psychiatric symptoms, affects younger patients than other types of CJD, and has a longer than usual duration from onset of symptoms to death. Another variant, called the panencephalopathic form, occurs primarily in Japan and has a relatively long course, with symptoms often progressing for several years. …

(해석) CJD에는 몇몇 알려진 변종들이 있다. 이 변종들은 질병의 증상과 경과에 있어서 조금 다르다. 예를 들어 영국과 프랑스에서 관찰된 new variant 또는 variant(nv-CJD 또는 v-CJD)라고 불리는 한가지 변종 형태는 처음에 주로 정신적인 증세로 시작하고, 다른 종류의 CJD보다 어린 환자에게 걸리고, 증세의 시작에서 사망까지 보통의 경우보다 오래 걸린다. 또다른 변종은, panencephalopathic form이라고 불리는데, 주로 일본에서 발생하고 통상 병의 경과가 오래 걸리며, 증상들이 종종 몇년에 걸쳐 발전한다. …)

의학에는 문외한이지만, 이 출처에서 보면 a variant of CJD라는 말을 갖고 vCJD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보인다. 위의 “There are several known variants of CJD.”에서 보듯이 variant는 한가지가 아니라 몇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기존의 더 전형적인(?) CJD에도 몇가지 종류(sporadic, hereditary, acquired)가 있다. 그러므로, 문장만을 보고 엄격하게 번역한다면 a variant of CJD를 인간광우병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틀린 번역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전후 문맥으로는 다를 수는 있다.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가 “a variant of CJD”라고 말했을 때 인간광우병이라는 ‘의미’로 말했을 수도 있다. 또한, CJD의 variant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vCJD이므로, ‘variant의 하나’라고 얘기해도 현실적으로는 대개 vCJD를 의미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의학계에서 실제로 이런지 아닌지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고 해도 주석이나 해설로 처리해야지, 문장에서 직접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9/11 테러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이 “과격 이슬람 테러집단”이라고 얘기한 것을 “알카에다”라고 옮기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 사람의 전후 문맥으로 보면 분명이 알 카에다를 가리키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알카에다”라고 자막에 내보내는 것이 옳은가? 분명히 (예를 들어 오사마 빈라덴을 언급하는 등) 알카에다를 가리키는 것이 맞더라도, 그 사람의 말은 그대로 내보내고 해설에서 “그 사람이 말한 과격 이슬람 테러집단은 알카에다”라고 하는 것이 올바른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경우 엄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부분 사람들이 간과하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우리가 미국인이라고 잠시 가정하자. 빈슨의 어머니가 “a variant of CJD”라고 말한 것을 variant CJD 또는 vCJD라고 자막(또는 신문)에서 옮겼다고 하자. 이것이 한국처럼 심각한 왜곡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될 수 있었을까? 본질적으로는 같은 문제지만, 강도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약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인에게는 a variant of CJD이건 variant CJD이건 모두 ‘CJD에 속한 병의 종류’로 들리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거기엔 ‘광우병’이라는 말이 없는 것이다. 이에 반해서 한국에서는 a variant of CJD는 CJD, variant CJD는 인간광우병으로 불리니 잘 모르는 일반인이 듣는 그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처럼 인간광우병이라고 불리지 않고 ‘(신)변종 CJD’라고 불렸다면, 일반인들은 ‘저게 뭔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명칭 자체에 선정성이 극도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어쩌면 문제도 안 될 수 있는 문제가 심각한 문제가 된 것이다. 이 병의 한국 이름이 ‘신변종 CJD’라는 기술적인 이름이었어도 우리가 이렇게 싸웠을까? ‘신변종 CJD’가 맞냐, ‘CJD의 한 변종’이 맞냐를 놓고? 별로 그랬을 것 같지 않다. ’인간광우병’이라는 중독적인 (따라 부르기 쉬운 후크송같은?) 이름이 있으니까, 그 이름을 자주 부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기본적으로 PD수첩의 왜곡여부가 이러한 한두가지 단어의 해석의 문제가 아닌 심각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법기술적으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겠지만, 사법부는 부디 전체적으로 어떤 메세지를 던지고 있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바란다. 창작물은 분해한 부분의 단순 합이 아니다.

하지만, 굳이 부분적 증거가 시비를 위하여 꼭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PD수첩의 왜곡 증거는 숱하게 많다. 예를 들어, 아래 링크를 보기 바란다.

http://freermarket.wordpress.com/2009/12/02/a-couple-of-years-mbc-pd/ (A couple of years = 2년?)

그 밖의 관련 글들은 여기.

http://freermarket.wordpress.com/?s=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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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월 27 at 11:41 오후

박근혜 의원께 드리고 싶은 세종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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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문제에 대한 수정안 지지자들의 입장은 간단하다. 행정부처들을 세종시에 옮기는 것은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고, 신속한 업무 협력이 어렵고, 수뇌부가 빨리 모여야 하는 긴급한 사태 발생시 위험할 수도 있고, 통일이 되었을 때 수도의 위치로서 적절하지도 못하다는 등의 이유이다. 또한 세종시 및 충남지방에도 행정부처들이 가는 것보다는 기업이나 대학이 가는 것이 더 자족환경을 만들기에 좋다는 것이다.

반대로 원안에 찬성하는 민주당 등 야당의 입장도 이해하기 쉽다. 행정부처를 분할해야 국토균형발전이 된다는 것이다. 서울 및 수도권으로 모든 투자가 집중되어서 지방은 점점 살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또한 수도권으로의 집중은 수도권 자체도 과밀화되어 좋지 않다는 것이다. 행정부처가 세종시에 가도, 통신과 교통의 발전으로 업무협력을 하는 데에 별 불편이 없을 것이라는 점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행정부처들을 옮기는 것에 반대한다. 통신과 교통이 아무리 발전해도 가까이 붙어있는 것의 장점에 비할 수는 없다. 실제로 KTX가 1시간이라고 해도, 표를 사는 시간, 사무실에서 나와서 역까지 가는 시간, 역에서 기다리는 시간, 역에서 나와서 차로 다시 이동하는 시간 등을 생각하면 2-3시간은 족히 걸린다. 그 뿐이 아니다. 2-3시간 걸려서 이동하고 1-2시간 회의 등 업무를 했다고 하자. 그러면 또 2-3시간 걸려서 돌아올 것인지가 애매하다. 돌아오면 퇴근시간이니 말이다. 돌아오지 않기도 애매하다. 숙소가 세종시에 있다면 말이다. 실제로는 그 날은 그 회의 외에 다른 일은 거의 못하게 된다고 보면 될 것이다.

누구 의견이 옳건, 대통령 및 수정안 찬성자와 야당의 의견은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짐작하기 어려운 것은 박근혜 의원의 의견이다. 질문은 다음과 같다.

  • 박근혜 의원께서는 세종시에 일부 행정부처가 가는 것이 국토균형발전 등의 이유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셔서 찬성하시는 것입니까? (질문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만약 지금 세종시가 백지에서 처음으로 논의되는 것이라면 행정부처 이전에 찬성하십니까?)
  • 아니면, 서울에 모여있는 것보다 바람직하지 않지만, 일단 법도 만들고 공약도 한 국민과의 약속이므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을 하시는 것입니까?
  • 만약 행정부처들이 옮겨갔는데, 심각한 문제들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런 질문에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Written by Freermarket

2010 1월 13 at 10:5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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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과 金大中-盧武鉉의 화해는 가능한가? (조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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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씨가 17년전에 썼다는데, 매우 깊은 깊이가 느껴진다. 그를 단순한 강경 보수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특히 읽어보기 바란다. 짧고 간결한 문장을 많이 사용해서 그런지 나도 처음엔 그런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알면 알수록 깊이가 느껴진다.

http://chogabje.com/board/view.asp?C_IDX=30734&C_CC=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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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월 11 at 9:27 오후

4대강 사업 정부여당 및 야당에 대한 비판과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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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여당에 대한 비판과 조언

4대강에 대해서 자세한 내용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특히 답답했던 것은, 4대강에 반대하는 논리는 많이 들리는데, 실제 사업을 기획하는 정부의 계획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서 검색을 해 보니 4대강 사업 공식 사이트가 생긴 것을 찾았다. 그리고 두개의 관련 블로그도 있었다.

http://www.4rivers.go.kr/

http://blog.naver.com/badailki

http://blog.daum.net/4kang42

이 사이트가 개설된 것은 2009년 10월인 것으로 보인다. 블로그들은 조금 더 오래되어 보인다. 항상 현재의 홍보가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물론 없는 것보다는 진일보한 것이지만, 아직 미흡하다. 4대강 사업이 거론된 것이 언제인데 사람들이 아직도 이런 웹사이트의 존재도 잘 모르고 있는 것인가? 더욱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정교한 홍보전략이 없다면 적어도 대통령이나 정부 여당의 주요 인사들이 관련 얘기를 할 때 웹사이트 주소를 알려주면서 들어가 보시라고 해야 한다.

또 한가지, 4대강 홍보에서 (또는 어떤 사업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Before & After를 쉽게 보여주는 것인데, 그렇지 못하다. 아마도 가장 쉽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이미지일 것이다. 강줄기, 강변, 수중 사진을 Before & After로 보여주면 현재는 이런데, 미래는 이렇게 고친다는 것이구나 하고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요점만 간단히가 없다. 보여주고 싶은 정보가 많아서 그런가본데, 그럴수록 핵심만 짚어주고 비주얼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

수치적인 변화도 간단히 도표화해서 보여줄 필요가 있다. 수량 변화 등은 간단히 Before & After로 그래프 등을 이용하여 보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위의 공식사이트에 보니까 동영상들이 많은데, 퍼가기 쉽게 되어있지 않다. 유튜브, 판도라, 태그스토리 등 동영상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해서 쉽게 퍼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글이나 이미지 등 다른 정보들도 그렇게 하기를 쉽게 하고 유도하여야 하는데 그런 것이 잘 안 보인다. 본 사람들의 참여를 홍보에 이용하여야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4대강 살리기는 무엇이다.’의 ‘무엇’을 쉽게 표현하는 표어가 필요하다. 지금 사이트를 보면 ‘행복4강’이란 말을 많이 쓰고 있는데, 그것은 제목이지 표어가 될 수는 없다. 항상 지속 반복하는 표어가 필요한 것이다. 일석 5조, 일석 7조 등의 말을 정부당국자들이 하는 것은 기억하는데, 그 실체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간결한 문장으로 욕심부리지 말고 2-3개 핵심 의미를 전달하기 바란다. 내가 들은 바로는 ‘더럽고 얕은 강을 깨끗하고 깊은 강으로,’ 또는 ‘아무도 찾지 않는 강을 모두가 가고 싶은 강으로’ 뭐 이런 의미들 아닌가? 어쨌거나 쉽게 와 닿는 구호는 중요하다. 그런 구호를 논의하는 과정이 실제 내용의 핵심을 정책 당국자들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야당에 대한 비판과 조언

야당의 반대에서 (실제 사실에 대한 논쟁과 별도로)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들을 몇 가지 짚어 본다.

야당은 대운하가 아니면 좋다고 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현재 4대강 사업은 대운하 사업이 아니다. 그런데도 계속 반대하는 것은 말을 바꾼 것 아닌가?

대운하는 아니지만, 대운하 전초 사업이다라는 논리도 있는 것으로 안다. 정부에서는 그것도 아니라고 반박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렇게 묻고 싶다. 훗날 만에 하나 운하의 필요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그 때 새로 다 공사해서 이중 지출을 하는 것보다, 지금 그 공사를 쉽게 하는 것이 나은 것 아닌가? 미래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나쁠 이유가 무엇인가? 교육이나 기업정책 등과 달리 4대강 사업 또는 운하 사업은 이념적인 색깔이 진하지 않은 이슈이다. 대형 국책사업은 민간자율을 강조하는 우파보다는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좌파의 정책에 가까울 수도 있다. 미국 민주당의 영웅인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도 댐 건설 등 대형 국책사업이 핵심이었듯이 말이다. (이렇게 보는 것은 권하고 싶지는 않지만) 전두환 대통령이 한 방송공영화가 야당에 유리한 방송구조를 만들었고, 지금은 야당이 오히려 그런 5공시절의 방송제도를 찬성하는 것처럼 미래에 야당이 집권하게되면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위의 두가지도 아니고 4대강 정비 자체가 필요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논리를 전개하기 바란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주장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야당의 텃밭인 호남지역에서도 사업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는 여론도 높다.

미국은 대통령도 건강보험 이슈에 타협하는데 왜 한국은 타협하지 않느냐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부정확 또는 부정직한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이 더 큰 타협을 했다는 것이다. 그게 무엇이냐면, 대운하를 포기한 것이다. 실질적으로는 대통령 공약의 핵심을 포기한 것이다. 찬성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매우 아쉬운 부분일 것이다. 나는 자세히는 모르지만, 느낌상으로는 하면 좋을 것 같았다. 배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것을 상상하면 좋지 않은가? 결국 인간의 모든 업적은 상상에서 나오는 것인데, 기분 좋은 상상 아닌가? 하지만 쇠고기 파동의 코너에 몰려 있을 때 야당에서 실질적인 눈엣 가시이던 대운하를 포기시킨 성과를 올린 것이다. 하나마나한 지난 이야기지만 당시의 정부 여당의 대응은, 위기였다고는 해도 참으로 허약하고 무책이었다. 어쨌거나, 이런 대타협을 이미 한 것이다.

또한, 최근 건강보험 이슈에서의 타협 등 미국 의회에서의 타협의 목적은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것이다. ‘다수결로 이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다수결 때문에’ 타협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미국 민주당에는 상당히 보수적인 의원들이 있고, 그들이 원안에 반대를 표시하자 지도부에서 이들을 찬성으로 돌리기 위하여 타협을 한 것이다. 또한 공화당에서도 찬성표를 이끌어내기 위하여 타협을 한 것이다. 국민여론도 의식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표결에서 이기기 위한 것이다.

우리 나라는 어떤가? 표결을 위한 준비인 논의부터 무력으로 막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타협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국민여론이 반대가 많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민주당은 그것을 의회민주주의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국민여론에 반하는 정책을 통과시킨 의원들은 다음 선거에 심판될 것이고, 그래야 한다.’라고 외치면서 누가 4대강에 찬성했는지를 웹사이트 등에 기록하고 다음 선거까지 지속 선전을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의회민주주의의 절차는 합법적으로 존중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여당의원들은 다시 한번 생각케 될 것이다. 이 여론조사들이 진짜 여론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추진하는 이 사업이 정말 여론의 반대를 무릅쓸 가치가 있는 것인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나는 당론과 반대되는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인가? 인기주의자는 첫번째 질문에서 ‘그렇다’고 생각되면 반대로 돌 것이고, 소신주의자는 두번째 세번째 질문을 깊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어쨌거나 그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야당의 의회민주주의적으로 업그레이드된 정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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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2월 27 at 11: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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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ouple of years = 2년? MBC PD 수첩의 또 하나의 오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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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일년이 넘게 지난 일이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는 대한민국의 지적, 문화적 취약성을 여지없이 드러낸 사회현상으로서 많은 과제를 주고 있음은 물론이고, 현실적으로도 그 수습이 진행중인 문제이다.

MBC PD 수첩의 오역에 대해서는 많은 지적이 있었지만, 잘못을 지적하는 분들도 간과하는 오역이 있어서 지적하고 싶다.

아래의 동영상을 보면 한 9분52초부터 나오는 미국 정육점 주인의 “…Some of the stuff around is a couple of years old, and that’ still very good.”를 “24개월 된 것도 판매하는데 상태가 좋은 편입니다”라고 번역했는데, 이것은 잘못된 번역이다. A couple of years는 ‘몇 년’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정확한 번역은 “몇년 된 고기들도 파는데 상태가 좋은 편입니다.”이다.

http://video.mgoon.com/1590478

A couple of는 a few와 유사한 뜻으로, 우리말로는 “몇”정도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영어사전인 http://dictionary.reference.com/browse/a%20couple%20of에서 couple 의미 14번을 보면 ‘more than two, but not many’라고 나와 있는대로, 2보다 큰 수를 말한다.

국내에서 외화 등에 종종 ‘a couple of’를 2로 해석되는 것을 본 적이 있지만, 드라마니까 그러려니하고 넘겼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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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2월 2 at 11:37 오후

박근혜 “미디어법, 여야 합의처리해야” 강조 :: 네이버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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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미디어법, 여야 합의처리해야” 강조 :: 네이버 뉴스 .

박근혜 의원의 얘기를 듣고, 궁금증이 생긴다.

  • 합의를 위해 토의하고, 의견 차이를 좁혀 보고, 최종 결정은 표결에 따르는 것이 대의민주주의 제도의 핵심 아닌가? 표결하지 않을 것이면 국회의원 선거는 왜 하는가?
  • 토의는 공짜가 아니다. 국회와 국회의원을 유지하는 비용, 관련 부서들이 이를 위하여 지원하고 정책이 대기하는 비용, 사회적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비용 등 매우 비싸다. 일반인들도 어떤 고민을 시작하면 최대한 빨리 결정하려고 노력한다. 미루는 것의 기회비용 때문이다. 그래서 “A bad decision is better than no decision.”이라고 하는 것이다. 박근혜 의원은 이 문제를 언제까지 토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 지분을 분산하면 좋은 것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왜 그런 생각을 하시는지? 지분이 분산된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망하고, 대주주가 경영하는 한국 회사들은 잘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분 분산을 오너 경영의 문제 때문에 제기하시는 것인가? 아니면,  지금 일부 지상파 방송의 편향된 방송이 지분의 집중 때문이라고 보는 것인가?
  • 시장점유율을 매체합산 30%로 하자고 하는데, 시장점유율 제한이 왜 필요한가? 지상파의 경우 규제에 의한 진입장벽이 굳은 독과점을 만들고 있고, 그것이 미디어법이 필요한 중요한 이유라고 본다. 하지만, 신문이나 인터넷 사이트의 선택은 순수히 국민들의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 아닌가? 국민들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을 제약하여야 한다는 말인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 백보를 양보해서 점유율을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자. 여기서 말하는 매체합산 점유율이란 무엇인가? 인터넷도 포함하는가? 무료신문도 포함되는가? 개인 블로그나 카페도 포함되는가? 적절히 잴 수 있다고 보는가?

박근혜 의원은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본인의 생각을 밝혀주시면 좋겠다.

Written by Freermarket

2009 7월 15 at 12:31 오후

두려움의 대상은 정부가 아니라 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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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나 검찰, 집권여당을 비판하면 용감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많다. 하지만 나는 이 시대에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대중의 여론’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런가? 우리의 정부 권력은, 입법, 사법, 행정 모두에서 ‘야만성’은 거의 없어졌다. 즉,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제도적 틀 안에서 상대하지 물리적 폭력이나 제도 밖의 공작을 통하여 제압하려고 하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내가 이렇게 정부가 싫어하는 말과 행동을 해도 이 정도 범위 안에서는 괜찮다. 또는 벌을 받아봐야 어느 정도이며, 견딜만 하다.”라는 예측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의 여론은 그렇지 않다. 여론의 합리성과 비폭력성은 어떤 면에서는 발전이 아니라 퇴보하는 듯이 보이기도 하다. 마녀사냥적인 사나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발언의 기회조차 주지 않고, 하루 아침에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물리적인 폭력의 위협까지도 있지만, 이는 드문 일이라고 치자. 가장 두려운 것은 어떤 사람을 인격적으로 매장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아마 이 욕구는 먹고 자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욕구라고 생각한다. 그와 필적하는 정신적 욕구는 아마 내가 사랑하는 사람(대표적으로 자식) 또는 어떤 가치/공동체가 잘 되기 원하는 마음 정도일 것이다. 이 두 가지 인간 본성의 차이점의 하나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비교적 이기적인 욕구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 공동체, 가치가 잘 되기 원하는 것은 비교적 이타적인 욕구라는 점이다.

하지만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너무나도 강하여, 비난이 쏟아지는 것을 견디기는 어렵다. 비난과 더불어 일자리를 위협받고, 하는 사업이 흔들리는 현실적 위험까지 예상되면, 대부분의 사람에 있어 답은 간단하다. 여론에 어긋나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 중앙일보 문창극 대기자의 칼럼을 보면, 어느 정도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여론의 위치를 지적할 듯 하다가 결국은 정부권력과의 양비론에 머물렀다.

http://news.joins.com/article/3639948.html

하지만 그가 말했듯이 사람들이 정부와 여론을 똑같이 두려워 할까?

만약 정부권력이 진정으로 두려운 힘이라면, 우리나라에는 너무나도 용감한 사람이 많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무섭고 힘센 정부권력을 칭송하고 ‘아부’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없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간단히 결론을 내리고 싶다. 사람들은 더이상 정부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예측 가능하고, 합리적인 제도 안에서 움직이는 정부의 힘은 한마디로 별 것 아닌 것이다. 특히 그 정부가 인기가 별로 없다면,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용기있는 행동이 아니라 정부를 칭송하는 것이 용감한 행동일 것이다. 나는 최근에 눈씻고 보아도 정부를, 대통령을 칭송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나는 현 정부를 지지하고, 현 대통령이 지금 존재하는 정치인들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끈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좌파에서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고 얘기하지만, 실제로 대다수 국민들의 실생활에 불편한 자유의 제약이 있었나? 오히려 좌파정부 때에 말못하고 숨죽이던 많은 우파 국민들에게는 실질적인 언론의 자유가 생겼다고 본다. 또한 좌파 논객들은 여전히 할 말 다하고 있다. 민주주의 후퇴라는 말은, 그들이 더 이상 미래지향적인 논제를 생산해 내지 못하는 것을 드러내는 데 불과하다고 본다.

일부 강성 우파에서는 이대통령이 단호하게 불법적인 반체제 세력을 제압하지 못한다고 비판하지만, 이는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고 본다. 맞는 것은 ‘지적인 싸움에서의 타협’이다. 현정부는 작년 촛불 시위 때에 올바른 사실을 제대로 전달하지도 못하고 사과했다.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고 내부에서는 생각할지 모르지만, 대통령이 사과하는 자리라는 가장 주목받는 자리에서도 진실을 말했어야 한다. 사과는 도심의 불법시위를 막지 못해서 시민들께 불편을 드린 것에 사과했어야 한다.

하지만, 강경파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은, 촛불시위를 강하게 진압하고 반체제 세력을 일거에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이기는 것이 중요하지 강하게 싸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그리고, 그렇게 정부에 화가 나면 스스로 나서라고.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정부만 욕하지 말고, 스스로 싸움에 나서라고. 촛불, 용산, 노대통령 서거 등의 국면에서 정부는 강하게 제압해서는 이길 수 없고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럴만하다. 왜냐하면, 반정부 여론만 요란하게 들리고, 친정부 여론은 (정부를 구박하는 우파 여론을 합한다고 해도) 별로 들리지 않은 것이다. 길거리는 물론이고 온라인이나 신문 방송에도 소수 의견에 불과하고 그나마 연약한 양비론에 불과한데 누굴 믿고 싸우나. 정부가 완전히 코너에 몰려있다고 판단하기 쉽다. 지금도 ‘침묵하는 다수’의 편을 들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침묵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믿고 싸우나.

나도 물론 정부의 행동에 불만이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살펴볼 때에, 현 정부는 상당히 선방하고 있고 조금씩이라도 전진하고 있다. 당장 이번만 해도 작년 촛불 시위 때보다는 훨씬 우파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정부가 제대로 못하니까 답답함을 참지 못한 의병이 나섰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 의견도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정부가 경제 외교 안보 등에서 성과를 내고, 반체제 세력의 위협에 정부가 쉽게 밀리지 않는 모습들이 우파의 힘을 키워 온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결론을 내자. 지금 가장 두려운 것은 여론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비합리적인 일부 군중적 여론이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인기를 얻는 것은 참으로 포기하기 어려운 욕망이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라,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자유로운 사회라는 가치를 위하여 일부에게 미움받고, 오해받고, 낙인 찍힘을 두려워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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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6월 8 at 11:4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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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과 장사치를 대질신문하는 것 자체가 모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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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명 전검찰총장이 중앙선데이와 인터뷰한 내용중에 듣기에 불편한 내용이 있었다.

http://news.joins.com/article/3637914.html

… 대통령이 일개 사업가에게 돈을 달라는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나. 없다. 가장 타락한 공무원도 가장 깨끗한 장사치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

전직 대통령과 장사치를 대질신문하는 것 자체가 모욕 아닌가.

아마도 사시동기이고 모셨던 대통령이 돌아가셨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을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또한, 전직 국가원수에게는 충분한 예우를 해주어야 한다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은 운영상의 묘로 나타나야지 다른 사람에게 적용되는 절차가 대통령 또는 고위공직자에게는 적용되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면 찬성할 수 없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장사치, 일개 기업인 등의 표현에서 보이는 이 분의 직업 차별적인 인식이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이지, 조선시대 같은 신분제 사회가 아니다. 장사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시장경제에서 거의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구멍가게 주인이건, 대기업 회장이건, 보험회사 설계사건, 중소기업 영업사원이건 다 장사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시장경제의 주인공들이고, 그들이 만든 부로 이 나라는 굴러가고, 공무원 월급과 사회간접자본을 위한 예산도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으로 장사치만이 가치있는 직업이라는 말도 아니다. 공직자들도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당연한 얘기를 또 하는 것이 우습지만,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에서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옛날 백정이 천시받았던 시절이 있다고 하지만, 도축업자가 없으면 우리가 맛있는 삼겹살을 먹겠는가?

각자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좋다. 내 일이 세상 최고라고 믿고 열심히 일하는 것은 아름답고, 친구들끼리 만나서 서로 자기 직업이 최고라고 으시대는 정도는 스포츠에서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나 모교를 응원하는 정도의 삶의 재미라고 본다. 하지만 정말 이런 인식을 갖고 사회생활의 기준을 삼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 전총장께서 감정적으로 평상심을 잃어 잠시 실언을 한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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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6월 7 at 2: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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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문화 우파가 먼저 반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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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노무현 대통령 사망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한 글이 인터넷에 올라오면 많은 댓글이 달린다. 좌파가 나라를 주도한 과거 10년동안 잘못된 것중 가장 심각한 것 하나가 문화의 저속화라고 하겠다. 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악을 쓰고, 때를 쓰고, 비아냥거리고, 비속어적인 유행어를 즐기고, 심지어 욕설과 저주를 퍼붓는 언어문화가 판을 치고 있다.

인터넷 포탈, 언론 사이트, 유명 논객의 글은 주로 정치적인 기사에서의 증오, 저주, 욕설의 토양이 되어왔고, TV 오락프로그램은 교양없는 말투를 정당화하거나 오히려 부추기는 역할을 해왔다고 보인다.

이런 문화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안다고 해도 지금 문제를 고치는 것과는 별개가 아닐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많이 남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이미 전염병에 걸렸다면, 시작이 누구였느냐는 것은 향후 예방을 위해서는 필요할 지 모르지만 전염병을 고치는 일에는 큰 의미가 없을 것으로 본다.

아이러니한 것은 좌파 10년이 문화의 저속화를 가져왔다고 비판하는 우파도 댓글에서는 입에 담기 어려운 저속한 말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욕설이나 상대방을 저주하는 발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는 이런 말이 사회를 파괴하고, 본인의 인성도 파괴하고,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원하는 우파의 사회적 영향력 확대에도 부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간단하다. 점잖고 교양있는 말을 쓰자. 비판을 하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라고 본다. 하지만 비판이 저주, 욕설, 비아냥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상대방을 파괴하기보다는 설득하려고 해야한다. 그래야 상대방도 자신의 잘못을 되돌아 보게 된다. 구경꾼들에게도 이 편이 훨씬 설득력 있다. 특히 요즘같은 미디어와 이미지의 시대에는 찰나의 인상이 중요하다. 이미지로 판단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과격한 언어는 거부감을 주고, 본질을 생각하기 전에 양비론에 빠지게 하고, 또한 그들도 그렇게 거칠고, 교양없는 문화를 닮아가게 한다.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 분노하는 것은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교야있는 언어로로 승화하지 못하면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파괴하게 될 것이고, 승리하려는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도 오히려 그렇게 분노했던 상대방의 힘을 더 강화시키게 될 것이다. 논리정연하되, 교양있는 언어문화를 퍼뜨리자.

Written by Freermarket

2009 6월 7 at 12:3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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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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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라는 말을 좌파에서 많이 사용한다. 사실 좌파에게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념이 중요하지 민주주의는 우파의 이념인데, 80년대 이후 이 용어가 좌파로 넘어간 느낌이다.

민주주의의 대표는 자유 민주주의이고,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당연히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를 의미하여야 한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무엇인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몇가지 적어 본다.

  • 정부권력이 혈통이나 특정 계급에 세습되지 않고, 국민의 의사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
  • 국민의 대표자로서 입법을 하는 의회 시스템
  • 정부나 타인에게서 부당하게 이익이나 권리를 침해받았을 경우 호소할 수 있는 공정한 사법 시스템의 존재
  • 국민 누구나 법의 지배를 받는 것. 법은 사전적으로 결정되어 있어 해도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이 투명하고, 소급입법을 금하여 자의적 처벌이 없을 것. 자유와 권리의 제한이 필요한 경우 권력의 자의적 행사가 아닌 법에 의할 것.
  • 비밀투표에 의하여 자신의 의사를 두려움 없이 나타낼 수 있는 각종 선거 및 민의 수렴 제도
  •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부당하게 또는 지나치게 침해하지 않는 것.

이런 민주주의 이상에 국민 다수는 넓고 깊은 공감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민주주의보다 폭력의 자유, 난동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그는 반민주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우파, 보수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지향하는 가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이다. 그것도 간단하게 얘기할 때는 민주주의라고 하면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좌파는? 글쎄 워낙 반대만을 해서 그들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가장 넓게 공통분모를 찾자면 사회주의 세력이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Written by Freermarket

      2009 6월 6 at 3:52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