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미디어법, 여야 합의처리해야” 강조 :: 네이버 뉴스
박근혜 “미디어법, 여야 합의처리해야” 강조 :: 네이버 뉴스 .
박근혜 의원의 얘기를 듣고, 궁금증이 생긴다.
- 합의를 위해 토의하고, 의견 차이를 좁혀 보고, 최종 결정은 표결에 따르는 것이 대의민주주의 제도의 핵심 아닌가? 표결하지 않을 것이면 국회의원 선거는 왜 하는가?
- 토의는 공짜가 아니다. 국회와 국회의원을 유지하는 비용, 관련 부서들이 이를 위하여 지원하고 정책이 대기하는 비용, 사회적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비용 등 매우 비싸다. 일반인들도 어떤 고민을 시작하면 최대한 빨리 결정하려고 노력한다. 미루는 것의 기회비용 때문이다. 그래서 “A bad decision is better than no decision.”이라고 하는 것이다. 박근혜 의원은 이 문제를 언제까지 토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 지분을 분산하면 좋은 것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왜 그런 생각을 하시는지? 지분이 분산된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망하고, 대주주가 경영하는 한국 회사들은 잘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분 분산을 오너 경영의 문제 때문에 제기하시는 것인가? 아니면, 지금 일부 지상파 방송의 편향된 방송이 지분의 집중 때문이라고 보는 것인가?
- 시장점유율을 매체합산 30%로 하자고 하는데, 시장점유율 제한이 왜 필요한가? 지상파의 경우 규제에 의한 진입장벽이 굳은 독과점을 만들고 있고, 그것이 미디어법이 필요한 중요한 이유라고 본다. 하지만, 신문이나 인터넷 사이트의 선택은 순수히 국민들의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 아닌가? 국민들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을 제약하여야 한다는 말인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 백보를 양보해서 점유율을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자. 여기서 말하는 매체합산 점유율이란 무엇인가? 인터넷도 포함하는가? 무료신문도 포함되는가? 개인 블로그나 카페도 포함되는가? 적절히 잴 수 있다고 보는가?
박근혜 의원은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본인의 생각을 밝혀주시면 좋겠다.
박근혜 “미디어법, 여야 합의처리해야” 강조 :: 네이버 뉴스
박근혜 “미디어법, 여야 합의처리해야” 강조 :: 네이버 뉴스 .
박근혜 의원의 얘기를 듣고, 궁금증이 생긴다.
- 합의를 위해 토의하고, 의견 차이를 좁혀 보고, 최종 결정은 표결에 따르는 것이 대의민주주의 제도의 핵심 아닌가? 표결하지 않을 것이면 국회의원 선거는 왜 하는가?
- 토의는 공짜가 아니다. 국회와 국회의원을 유지하는 비용, 관련 부서들이 이를 위하여 업부 지원하고 정책이 대기하는 비용, 사회적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비용 등 매우 비싸다. 일반인들도 어떤 고민을 시작하면 최대한 빨리 결정하려고 노력한다. 다 미루는 것의 기회비용 때문이다. 그래서 “A bad decision is better than no decision.”이라고 하는 것이다.
- 지분을 분산하면 좋은 것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왜 그런 생각을 하시는지? 지금 지상파 방송들의 편향된 방송은 지분이 소수에게 몰려 있어서인가? 그렇다면 그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시장점유율을 매체합산 30%로 하자고 하는데, 시장점유율 제한이 왜 필요한가? 지상파의 경우 규제에 의한 진입장벽이 굳은 독과점을 만들고 있고, 그것이 미디어법이 필요한 중요한 이유라고 본다. 하지만, 신문이나 인터넷 사이트의 선택은 순수히 국민들의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 아닌가? 국민들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을 제약하여야 한다는 말인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 백보를 양보해서 점유율을 제한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하자. 여기서 말하는 매체합산 점유율이란 무엇인가? 인터넷도 포함하는가? 무료신문도 포함되는가? 개인 블로그나 카페도 포함되는가? 적절히 잴 수 있다고 보는가?
박근혜 의원은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본인의 생각을 밝혀주시면 좋겠다.
두려움의 대상은 정부가 아니라 여론
대통령이나 검찰, 집권여당을 비판하면 용감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많다. 하지만 나는 이 시대에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대중의 여론’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런가? 우리의 정부 권력은, 입법, 사법, 행정 모두에서 ‘야만성’은 거의 없어졌다. 즉,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제도적 틀 안에서 상대하지 물리적 폭력이나 제도 밖의 공작을 통하여 제압하려고 하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내가 이렇게 정부가 싫어하는 말과 행동을 해도 이 정도 범위 안에서는 괜찮다. 또는 벌을 받아봐야 어느 정도이며, 견딜만 하다.”라는 예측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의 여론은 그렇지 않다. 여론의 합리성과 비폭력성은 어떤 면에서는 발전이 아니라 퇴보하는 듯이 보이기도 하다. 마녀사냥적인 사나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발언의 기회조차 주지 않고, 하루 아침에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물리적인 폭력의 위협까지도 있지만, 이는 드문 일이라고 치자. 가장 두려운 것은 어떤 사람을 인격적으로 매장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아마 이 욕구는 먹고 자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욕구라고 생각한다. 그와 필적하는 정신적 욕구는 아마 내가 사랑하는 사람(대표적으로 자식) 또는 어떤 가치/공동체가 잘 되기 원하는 마음 정도일 것이다. 이 두 가지 인간 본성의 차이점의 하나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비교적 이기적인 욕구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 공동체, 가치가 잘 되기 원하는 것은 비교적 이타적인 욕구라는 점이다.
하지만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너무나도 강하여, 비난이 쏟아지는 것을 견디기는 어렵다. 비난과 더불어 일자리를 위협받고, 하는 사업이 흔들리는 현실적 위험까지 예상되면, 대부분의 사람에 있어 답은 간단하다. 여론에 어긋나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 중앙일보 문창극 대기자의 칼럼을 보면, 어느 정도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여론의 위치를 지적할 듯 하다가 결국은 정부권력과의 양비론에 머물렀다.
http://news.joins.com/article/3639948.html
하지만 그가 말했듯이 사람들이 정부와 여론을 똑같이 두려워 할까?
만약 정부권력이 진정으로 두려운 힘이라면, 우리나라에는 너무나도 용감한 사람이 많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무섭고 힘센 정부권력을 칭송하고 ‘아부’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없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간단히 결론을 내리고 싶다. 사람들은 더이상 정부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예측 가능하고, 합리적인 제도 안에서 움직이는 정부의 힘은 한마디로 별 것 아닌 것이다. 특히 그 정부가 인기가 별로 없다면,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용기있는 행동이 아니라 정부를 칭송하는 것이 용감한 행동일 것이다. 나는 최근에 눈씻고 보아도 정부를, 대통령을 칭송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나는 현 정부를 지지하고, 현 대통령이 지금 존재하는 정치인들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끈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좌파에서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고 얘기하지만, 실제로 대다수 국민들의 실생활에 불편한 자유의 제약이 있었나? 오히려 좌파정부 때에 말못하고 숨죽이던 많은 우파 국민들에게는 실질적인 언론의 자유가 생겼다고 본다. 또한 좌파 논객들은 여전히 할 말 다하고 있다. 민주주의 후퇴라는 말은, 그들이 더 이상 미래지향적인 논제를 생산해 내지 못하는 것을 드러내는 데 불과하다고 본다.
일부 강성 우파에서는 이대통령이 단호하게 불법적인 반체제 세력을 제압하지 못한다고 비판하지만, 이는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고 본다. 맞는 것은 ‘지적인 싸움에서의 타협’이다. 현정부는 작년 촛불 시위 때에 올바른 사실을 제대로 전달하지도 못하고 사과했다.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고 내부에서는 생각할지 모르지만, 대통령이 사과하는 자리라는 가장 주목받는 자리에서도 진실을 말했어야 한다. 사과는 도심의 불법시위를 막지 못해서 시민들께 불편을 드린 것에 사과했어야 한다.
하지만, 강경파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은, 촛불시위를 강하게 진압하고 반체제 세력을 일거에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이기는 것이 중요하지 강하게 싸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그리고, 그렇게 정부에 화가 나면 스스로 나서라고.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정부만 욕하지 말고, 스스로 싸움에 나서라고. 촛불, 용산, 노대통령 서거 등의 국면에서 정부는 강하게 제압해서는 이길 수 없고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럴만하다. 왜냐하면, 반정부 여론만 요란하게 들리고, 친정부 여론은 (정부를 구박하는 우파 여론을 합한다고 해도) 별로 들리지 않은 것이다. 길거리는 물론이고 온라인이나 신문 방송에도 소수 의견에 불과하고 그나마 연약한 양비론에 불과한데 누굴 믿고 싸우나. 정부가 완전히 코너에 몰려있다고 판단하기 쉽다. 지금도 ‘침묵하는 다수’의 편을 들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침묵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믿고 싸우나.
나도 물론 정부의 행동에 불만이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살펴볼 때에, 현 정부는 상당히 선방하고 있고 조금씩이라도 전진하고 있다. 당장 이번만 해도 작년 촛불 시위 때보다는 훨씬 우파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정부가 제대로 못하니까 답답함을 참지 못한 의병이 나섰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 의견도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정부가 경제 외교 안보 등에서 성과를 내고, 반체제 세력의 위협에 정부가 쉽게 밀리지 않는 모습들이 우파의 힘을 키워 온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결론을 내자. 지금 가장 두려운 것은 여론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비합리적인 일부 군중적 여론이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인기를 얻는 것은 참으로 포기하기 어려운 욕망이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라,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자유로운 사회라는 가치를 위하여 일부에게 미움받고, 오해받고, 낙인 찍힘을 두려워 하지 말자.
전직 대통령과 장사치를 대질신문하는 것 자체가 모욕?
정상명 전검찰총장이 중앙선데이와 인터뷰한 내용중에 듣기에 불편한 내용이 있었다.
http://news.joins.com/article/3637914.html
… 대통령이 일개 사업가에게 돈을 달라는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나. 없다. 가장 타락한 공무원도 가장 깨끗한 장사치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
전직 대통령과 장사치를 대질신문하는 것 자체가 모욕 아닌가.
아마도 사시동기이고 모셨던 대통령이 돌아가셨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을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또한, 전직 국가원수에게는 충분한 예우를 해주어야 한다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은 운영상의 묘로 나타나야지 다른 사람에게 적용되는 절차가 대통령 또는 고위공직자에게는 적용되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면 찬성할 수 없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장사치, 일개 기업인 등의 표현에서 보이는 이 분의 직업 차별적인 인식이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이지, 조선시대 같은 신분제 사회가 아니다. 장사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시장경제에서 거의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구멍가게 주인이건, 대기업 회장이건, 보험회사 설계사건, 중소기업 영업사원이건 다 장사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시장경제의 주인공들이고, 그들이 만든 부로 이 나라는 굴러가고, 공무원 월급과 사회간접자본을 위한 예산도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으로 장사치만이 가치있는 직업이라는 말도 아니다. 공직자들도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당연한 얘기를 또 하는 것이 우습지만,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에서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옛날 백정이 천시받았던 시절이 있다고 하지만, 도축업자가 없으면 우리가 맛있는 삼겹살을 먹겠는가?
각자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좋다. 내 일이 세상 최고라고 믿고 열심히 일하는 것은 아름답고, 친구들끼리 만나서 서로 자기 직업이 최고라고 으시대는 정도는 스포츠에서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나 모교를 응원하는 정도의 삶의 재미라고 본다. 하지만 정말 이런 인식을 갖고 사회생활의 기준을 삼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 전총장께서 감정적으로 평상심을 잃어 잠시 실언을 한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댓글문화 우파가 먼저 반성하자
최근 노무현 대통령 사망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한 글이 인터넷에 올라오면 많은 댓글이 달린다. 좌파가 나라를 주도한 과거 10년동안 잘못된 것중 가장 심각한 것 하나가 문화의 저속화라고 하겠다. 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악을 쓰고, 때를 쓰고, 비아냥거리고, 비속어적인 유행어를 즐기고, 심지어 욕설과 저주를 퍼붓는 언어문화가 판을 치고 있다.
인터넷 포탈, 언론 사이트, 유명 논객의 글은 주로 정치적인 기사에서의 증오, 저주, 욕설의 토양이 되어왔고, TV 오락프로그램은 교양없는 말투를 정당화하거나 오히려 부추기는 역할을 해왔다고 보인다.
이런 문화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안다고 해도 지금 문제를 고치는 것과는 별개가 아닐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많이 남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이미 전염병에 걸렸다면, 시작이 누구였느냐는 것은 향후 예방을 위해서는 필요할 지 모르지만 전염병을 고치는 일에는 큰 의미가 없을 것으로 본다.
아이러니한 것은 좌파 10년이 문화의 저속화를 가져왔다고 비판하는 우파도 댓글에서는 입에 담기 어려운 저속한 말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욕설이나 상대방을 저주하는 발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는 이런 말이 사회를 파괴하고, 본인의 인성도 파괴하고,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원하는 우파의 사회적 영향력 확대에도 부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간단하다. 점잖고 교양있는 말을 쓰자. 비판을 하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라고 본다. 하지만 비판이 저주, 욕설, 비아냥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상대방을 파괴하기보다는 설득하려고 해야한다. 그래야 상대방도 자신의 잘못을 되돌아 보게 된다. 구경꾼들에게도 이 편이 훨씬 설득력 있다. 특히 요즘같은 미디어와 이미지의 시대에는 찰나의 인상이 중요하다. 이미지로 판단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과격한 언어는 거부감을 주고, 본질을 생각하기 전에 양비론에 빠지게 하고, 또한 그들도 그렇게 거칠고, 교양없는 문화를 닮아가게 한다.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 분노하는 것은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교야있는 언어로로 승화하지 못하면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파괴하게 될 것이고, 승리하려는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도 오히려 그렇게 분노했던 상대방의 힘을 더 강화시키게 될 것이다. 논리정연하되, 교양있는 언어문화를 퍼뜨리자.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
민주주의라는 말을 좌파에서 많이 사용한다. 사실 좌파에게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념이 중요하지 민주주의는 우파의 이념인데, 80년대 이후 이 용어가 좌파로 넘어간 느낌이다.
민주주의의 대표는 자유 민주주의이고,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당연히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를 의미하여야 한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무엇인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몇가지 적어 본다.
- 정부권력이 혈통이나 특정 계급에 세습되지 않고, 국민의 의사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
- 국민의 대표자로서 입법을 하는 의회 시스템
- 정부나 타인에게서 부당하게 이익이나 권리를 침해받았을 경우 호소할 수 있는 공정한 사법 시스템의 존재
- 국민 누구나 법의 지배를 받는 것. 법은 사전적으로 결정되어 있어 해도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이 투명하고, 소급입법을 금하여 자의적 처벌이 없을 것. 자유와 권리의 제한이 필요한 경우 권력의 자의적 행사가 아닌 법에 의할 것.
- 비밀투표에 의하여 자신의 의사를 두려움 없이 나타낼 수 있는 각종 선거 및 민의 수렴 제도
-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부당하게 또는 지나치게 침해하지 않는 것.
이런 민주주의 이상에 국민 다수는 넓고 깊은 공감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민주주의보다 폭력의 자유, 난동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그는 반민주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우파, 보수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지향하는 가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이다. 그것도 간단하게 얘기할 때는 민주주의라고 하면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좌파는? 글쎄 워낙 반대만을 해서 그들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가장 넓게 공통분모를 찾자면 사회주의 세력이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서거와 자살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알리는 신문 기사에 서거가 맞냐 자살이 맞냐로 한바탕 논란이 있었다. 나는 사실 이런 논쟁은 별로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둘 다 맞기 때문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므므로 자살은 맞는 말이다. 자살에도 높임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없다면 자살이라는 표현은 사실을 잘 전달해 주므로 문제가 없다.
서거라는 말은 주로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표현하는 말로 알고있다. 그렇다면 그것도 맞는 말이다.
“어떻게 죽었느냐”라는 과정을 중시해서 기자가 ‘자살’로 썼다고 해도 문제될 것이 없고, 죽음이라는 결과를 중시해서 ‘서거’라고 썼어도 문제될 것이 없다. 글이라는 것은 관점이 들어가게 마련이고, 사실을 전달할 때에도 앞에서 봤느냐 옆에서 봤느냐라는 관점에 따라 표현은 다를 수 밖에 없으므로 어떤 표현은 맞고 어떤 표현은 틀렸다고 하는 것은 그리 설득력이 없다.
단지, 전직 대통령이고 아직 젊은 나이였던 분이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과정을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렇다면 기자들이 왜 대부분 자살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 정도는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따져 뭣하겠느냐마는, 굳이 추측하자면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권력인 ‘감정적 여론’을 두려워 한 것이 아닐까.
20년 전에 쓴 한국사회 좌경화 경고
이 글을 읽으면서 너무나 후일을 잘 예측한 것에 감탄하였다. 돌이켜보면 그 때 그런 걱정이 들기도 하였다. 공산주의 사상을 갖고 있는 사람을 그렇게 부르면 용공조작한다고 반발하고, 또 그게 먹혀들어가는 현실이었다.
깨진 창문 이론은 참으로 유효하다. 작은 조짐을 무시하면 큰 낭패를 맞게 된다.
박근혜 의원의 대통령에 대한 태도 유감
박근혜 의원의 정책적인 입장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한가지 꼭 지적하고 싶은 것이 그의 대통령에 대한 태도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어른이나 지도자를 공경하는 것을 배운다. 이는 사회의 평화로운 질서를 위하여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전인류, 전역사를 통털어서 지켜져 온 덕목이라고 본다. 물론 공산주의 혁명 등 이러한 덕목이 짓밟힌 적도 있지만, 이는 일종의 집단 광기에 의한 예외적인 경우라고 생각한다.
가정에서는 부모님을, 학교에서는 선생님께, 직장에서는 상사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은 단순하고 때로는 고지식해 보이지만, 그런 질서의 근본을 이룬다. 개혁적인 것과 예의를 지키는 것은 무관하다. 오히려 예의를 지키지 않는 개혁 주창자라면 그 사람들의 깊이에 대하여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대통령은 나라의 어른이고 지도자이다. 누구나, 특히 우파라면 존경을 표하고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특히 어른들이 그런 모습을 보여야 자라나는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본받을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의원의 태도는 대통령을 어른으로 지도자로 대우하지 않는 모습이라는 인상을 종종 받는다. 대통령을 만나는 모습에서 깍듯이 고개 숙이고 보기 좋게 미소짓는 모습을 본 기억보다는 뻣뻣이 서서 대통령을 맛상대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기자들에게 말 할 때에도 ‘국정에 수고하시는 대통령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 같은 수준은 고사하고, 반대하는데 있어서 일말의 죄송함같은 그런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고 얘기한다. ‘의도는 감사하고 좋지만 어렵겠다’라고 해도 충분히 알아들을 텐데, 의도 자체를 공격한다.
박근혜 의원이 그동안 얼마나 억울한 지 모르겠지만, 그런 태도는 그런 억울함이나 명분과 관계 없이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과거 10년, 특히 노무현 대통령 시절 열린우리당의 모습에서 좋지 않았던 것 중의 하나가 대통령을 우습게 아는 태도였다. 그런 모습은 좌우를 떠나서 우리 사회의 건강한 정신문화에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혹자는 이것이 구시대적이고 전근대적인 생각 아니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형식적인 의전을 얘기하는 것도 아니다. 지도자와 어른에 대한 존경과 예의는 가장 격식이 없는 사회처럼 보이는 미국, 심지어 그 안에서도 상대적으로 급진적인 민주당 지지층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가치이다. 그들이 얼마나 윗사람에게 깍뜻한지 알고나면 한국이 얼마나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이름에서 멀어져 왔는지 알 수 있다.
박근혜 의원은 그런 태도를 계속 보일 것이면 차라리 한나라당을 떠나기 바란다. 야당 당수라면 그나마 보는 사람 마음이 덜 불편할 것 같다. 물론 야당 지도자라고 할지라도 국민들 앞에서 대통령을 만날 때 예의를 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하여 비판적이라고 하여도 그에 대하여 입에 담지 못할 인신공격을 하는 것도 매우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나라의 지도자였는데 그런 표현은 같은 우파로서 수치스러운 행동이다.
박근혜 의원에게 부탁드립니다. 예의를 지키십시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하실 때에도 자신을 낮추고 대통령을 높이십시오. 대통령과 만나실 때에는 깎듯이 고개숙이고 상냥한 얼굴로 대하십시오. 대통령과 관련된 말씀을 하실 때에는 대통령께 예의를 갖추시고 직접 비난하는 뉘앙스는 삼가십시오. 당대표도 엄밀히 얘기하면, 당원에게는 지도자입니다. 속으로는 어떻게 보실지 모르지만 적어도 국민들이 보시는데 당대표의 위신을 깎아내리는 행동은 삼가주십시오. 그것이 국가의 지도층으로 모범을 보이시는 길입니다. ‘그게 당신의 앞길에도 더 좋을 것입니다’ 그런 얘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은 이 자체로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치를 흔들면서 대통령이 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